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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날씨의 아이> 다회차 관람 소감 및 잡다한 정보

빗도 2019. 11. 3. 23:26

너무나 손꼽아 기다렸던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신작이라 극한의 재미를 위해 일부러 예고편이나 줄거리를 찾아보지 않고 감상했다. 1회차 감상평은 전개도 어설프고 감동도 미지근한 여러모로 아쉬운 영화였다. 아무래도 무의식적으로 감독의 이전작인 <너의 이름은.>과 비교했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를 보고 난 후 계속해서 남아있는 알 수 없는 감정의 응어리를 풀고자 2회차를 감상했고, 2회차부터 평가가 완전히 달라졌다. <너의 이름은.>과 비교하면 1회차 땐 0.6 너의 이름은 정도였고, 2회차 땐 0.9 너의 이름은, 그 이후 지금에 와서는 동급 혹은 그 이상일 정도다. 이번 <날씨의 아이>는 곱씹을수록 진국인 아주 특별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다회차 관람을 하며 느낀 소감과 깨알 정보, 명대사, OST에 대해 정리해보려고 함.

 

※ 스포일러 주의


1. 왜 호불호가 크게 갈리는가? 1회차 감상평이 별로인 이유와 2회차 감상을 해야 하는 이유

우선 <날씨의 아이>는 여타 평범한 해피엔딩 영화와는 주제의식이 다르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최대 흥행작이자 이전작인 <너의 이름은.>과 비교해보면 명확하게 드러난다. <너의 이름은.>의 주인공은 주인공을 포함한 다수의 행복을 위해 달려간다면, <날씨의 아이>는 주인공이 타인이 불행해지더라도 자신의 행복을 찾으려 한다. <너의 이름은.>과는 애초에 결이 다른 것이다. 또한 <너의 이름은.>은 모두가 쉽게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지만 <날씨의 아이>는 관점이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 데다 인물 및 상황의 묘사가 부족한 부분이 있어서 곱씹어봐야 이해되는 부분이 많다. 따라서 <너의 이름은.>의 시선으로 <날씨의 아이>를 감상하면 전개도 이상하고 결말도 찝찝한 그런 영화가 돼버리는 것이다. 이는 묘사와 설명을 좀 더 풍부하게 하지 못한 감독의 잘못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인터뷰 발언을 생각해보면 이는 충분히 의도했을 가능성이 높다.

신카이 감독님, 당신이 이겼습니다.

<너의 이름은.>은 1회차 감상과 2회차 감상이 크게 달라질 일이 없지만, <날씨의 아이>는 2회차에서 감상이 완전히 달라진다. 아무것도 모르는 1회차 때 <날씨의 아이>를 제3자 시점으로 보면, 주인공 '호다카'는 정말 뜬금없고 비상식적인 행동만 하다가 결국 세상을 재앙으로 바꿔놓고, '스가'는 영화 후반부에 호다카를 막더니 갑자기 마음이 바뀌어 호다카를 돕는 뜬금없는 전개를 보여준다. 앞서 말했다시피 묘사와 설명이 부족하기에 1회차 감상에선 개연성 및 결말에 대해 악평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이번 <날씨의 아이> 영화 관람의 핵심은 '얼마나 주인공 호다카의 입장을 공감하고 감정을 이입할 수 있는가?'라고 생각한다. 왜 호다카가 그런 앞뒤 안 가리는 비상식적인 선택과 행동을 했는지 이해한 순간, 결말에 대한 평가가 180도 달라진다. 호다카는 이제 겨우 16살짜리 소년이라는 점을 절대 잊지 말자.

호다카가 가출하여 도착한 도쿄는 무섭고 차갑기만 한데, 완전히 궁지에 몰린 상황에서 유일하게 여주인공 '히나'가 호다카에게 친절을 베푼다. 이후 어떤 사건을 계기로 이 둘은 가까워지게 되고, 사회로부터 철저하게 소외된 이 두 주인공은 서로를 보듬어주며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존재가 된다. 특히 돌아갈 곳이 없는 호다카에게는 더더욱. 호다카는 세상 물정 모르는 16살 남자아이이기에, 호다카에게 히나는 이 세상의 전부이기에 이성적인 판단보다는 돌발적인, 감성적인 판단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밝힌 <날씨의 아이> 제작 계기는 이렇다. "누군가가 어딘가에서 꼭 희생이 되어간다는 것을 느꼈다. 우리는 누군가의 희생을 알면서도 모르는척 하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최근에 했다. 그래서 주위에서 '네가 그런 식으로 하면 세상이 완전히 망해버려'라는 식으로 다들 반대를 하고 공격을 해도, '내게는 네가 가장 소중하다'라고, 주의의 모든 것들을 신경 쓰지 않고 외칠 수 있는, 그러한 호다카 같은 주인공을 그려내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호다카가 히나를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에서, 그리고 결말부의 장면에서 애잔함을 느끼는 순간, 이 영화는 소년 소녀의 한없이 아름답고 맹목적인 사랑 이야기가 된다. 이 영화를 위선적인 어른의 탈을 벗고 감상했으면 좋겠다.

 

 


2. 꼭 총이 등장했어야만 했나?


'총'이라는 건 그 단어 자체만으로도 부정적인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나도 1회차 감상 땐 총의 등장이 굉장히 뜬금없고 잘 이해되지 않았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총만 한 소재가 없다는 걸 느꼈다. 총은 영화에서 호다카의 '의지'를 보여주는 훌륭한 소재로 사용되었다. 첫 번째 발포는 장난감 총인 줄로만 알고 발포했지만, 영화 후반부 폐건물에서의 두 번째 발포는 이게 실제 총이라는 걸 호다카는 이미 인지한 상태고, 총을 함부로 쏘면 어떻게 되는지 모를 리 없는데도 "난 그저 한 번만 더 그 아이(히나)를 만나고싶을 뿐이야!"라며 망설임 없이 발포한다. "법이든 위험이든 난 아무것도 상관없고 신경 쓰지 않으니 제발 날 막지 마라"라는 호다카의 '의지'를 나타내기에 충분한 장면이다. 자신을 이해해주지 않는 어른을 견제하기 위한 수단, 자신의 강렬한 뜻을 보여주는 수단. 또한 그러한 모습에서 스가는 사랑하는 이를 찾고자 갈망하는 호다카의 마음에 동감하게 되고 마음을 바꾸어 호다카를 돕게 된다. 이러한 상황을 위해 '극단적인 무기 사용'이 필요했고, 현대 사회에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상대와 대등하게 대적할 수 있는 무기로써 '총'이 가장 적절했다고 생각한다.

 

 

 

3. 마지막 엔딩 장면에서 히나의 기도

 

아마도 '죄책감'이 아닐까 싶다. 호다카가 하늘에서 히나를 데려올 때 "네 자신을 위해 기도해."라고 말한다. 히나는 호다카와 함께 살아가기를 기도함으로써 다시 돌아올 수 있었고, 그 대가로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3년간 쉴 새 없이. 도쿄가 물에 잠기게 된 게 히나 자신이 희생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생각에 더 이상 맑음소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매일같이 기도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히나를 만나러 가는 호다카는 죄책감 속에서 스가와 타키네 할머니의 말을 빌어 이러한 세상의 결과가 자신의 탓이 아님을 스스로 합리화하며 히나에게도 합리화를 통해 그 짐을 덜어주려고 하는데, 기도하는 히나의 모습을 보고 "아니야. 그게 아니야. 우리가 바꿨어. 그 여름. 그 하늘 위에서 내가 선택한거야. 푸른 하늘이 아닌 히나를!"이라며 합리화를 포기하고 자신의 선택에 후회가 없음을 확신한다. 호다카의 입장에서 관람해야 깊은 여운과 해피엔딩을 느낄 수 있는 이유다.

 

 


4. 다회차 관람을 하며 알게된 깨알 포인트

 

- <너의 이름은.> 작품 속 인물들이 카메오로 등장한다. 사야카&텟시, 타키, 미츠하, 요츠하 순으로 등장함.

- 맑음알바 중 코스프레 의뢰인 장면에서 아쿠아와 미쿠가 지나간다.

- 불꽃축제 씬 헬기 포트에서 히나는 "않지(나쿠모)"를 7번 말한다. "괜찮지 않지 않지 않지 않지 않지 않지 않지 않아!" 즉 긍정이라는 말. 이어지는 대사 "너 진지한 성격이구나."

- 영화 극후반부, 타키네 할머니 손목에 매듭 끈(쿠미히모)이 묶여있다. 무대인사 때 감독님피셜, 그 시점엔 타키와 미츠하가 결혼했다.(평행세계)

- 영화 극후반부, K&A 사무실에 나츠미의 헬멧이 한 책상에 놓여있다. 취업에 실패하고 계속 남아있는 듯.

 

 

 

5. 내가 꼽은 명대사

 

- "신이시여, 저희에게 더 이상 그 무엇도 주지 마시고, 더 이상 그 무엇도 빼앗아가지 말아 주세요. 부탁드립니다." -- 호다카, 호텔에서의 기도

- "맑은 날 따위 두 번 다시 못 봐도 괜찮아! 나는 푸른 하늘보다 히나가 소중해! 날씨 따위.. 계속 미쳐 있어도 돼!" -- 호다카, 하늘에서 히나를 붙잡으며

- "아니야. 그게 아니야. 우리가 바꿨어. 그 여름. 그 하늘 위에서 내가 선택한 거야. 푸른 하늘이 아닌 히나를!" -- 호다카, 결말부에서 기도하는 히나를 보며

 

 

 

6. OST 소감

 

- 6번 트랙, 바람의 목소리(風たちの声, Voice Of Wind) : 호다카가 K&A에서 일하기 시작하며 나오는 노래. 호다카의 도쿄에서 처음으로 찾은 행복과 미래에 대한 근거 없는 자신감이 느껴지는 곡이다.

- 12번 트랙, 축제(祝祭, Celebration) : 맑음알바를 시작하며 나오는 노래. 맑음알바를 하며 느끼는 기쁨을 노래했는데, 호다카와 히나 모두에게 대입할 수 있는 곡이다.

- 13번 트랙, 불꽃축제(花火大会, Fireworks Festival) : 맑음알바 불꽃축제 행사건을 할 때 흘러나오는 반주. 특히 헬기 포트에서 곡의 하이라이트 부분과 맞물리는, 히나가 기도하자 날씨가 맑아지기 시작하는 장면은 탄성을 자아낸다.

- 20번 트랙, 가족의 시간(家族の時間, Time With Family) : 호텔에서의 소소한 행복 속에서 호다카가 신에게 기도하는 장면에서 흘러나오는 반주. '사랑이 할 수 있는 일이 아직 있을까'의 반주를 어레인지 한 곡이다. 눈물이 터질 수밖에 없는 장면이다. <너의 이름은.>엔 미츠하의 테마가 있다면 <날씨의 아이>엔 가족의 시간이 있다!

- 26번 트랙, 히나를 향한 달리기(陽菜と、走る帆高, Running With Hina) : 호다카가 철로를 달릴 때 흘러나온 반주. 20번 트랙과 마찬가지로 반주를 어레인지 한 곡인데, 장면에 맞춰 갈수록 웅장 해지는 느낌으로 편곡됐다.

- 27번 트랙, 사랑이 할 수 있는 일이 아직 있을까(愛にできることはまだあるかい, Is There Still Anything That Love Can Do?) : 폐건물에서 호다카가 두 번째 발포를 한 후 흘러나오는 노래. 20번, 26번 트랙의 보컬 버전이다. 눈물이 터질 수밖에 없는 장면 2. 상황도 가사도 분위기도 너무 절묘하다. 31번 트랙에 6분 54초짜리 풀버전이 수록되어있다.

- 28번 트랙, 그랜드 이스케이프(グランドエスケープ , Grand Escape) : 일명 그익/대탈출. 호다카가 히나를 찾기 위해 하늘로 올라간 후 흘러나오는 노래인데, 첫 가사가 두 사람의 선택을 묘사하고 있어 영화의 주제를 관통하는 핵심 보컬곡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합창이 시작될 때 영화관의 빵빵한 사운드가 더해지면 소름이 안 돋을 수가 없다.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하는 곡이다. 하이라이트가 짧아서 아쉬울 따름. <너의 이름은.>엔 스파클이 있다면 <날씨의 아이>엔 그랜드 이스케이프가 있다! 지난주에 일본에서 첫 풀버전 뮤비가 공개됐는데 현재는 비공개 전환되어 내려간 상태.

- 30번 트랙, 괜찮아(大丈夫, We'll Be Alright) : 다이죠부. 결말부에서 사용된 노래. 대탈출과 더불어 소름 돋는 노래 2. 감독의 비하인드 스토리에 따르면, 처음 이 곡을 들었을 땐 곡의 감정선이 너무 강해 사용하기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가, 엔딩 장면 하나만 구상하지 못하고 고민하던 때에 이 곡을 다시 듣자 '결국 이 영화의 모든 내용이 이 곡에 전부 담겨있었다.'라고 느꼈고, 이 곡 덕분에 엔딩 장면을 완성했다고 한다. 결말부, 기도하는 히나를 바라보는 호다카의 모습에서 이 노래 첫 소절이 흘러나올 땐 그저 미쳤다는 생각밖엔 들지 않았다. 래드윔프스는 신카이 마코토 감독과 너무 궁합이 잘 맞는 듯. 앞으로도 계속 함께 작업했으면 좋겠다.


<너의 이름은.> 때는 보면 볼수록 감동이 무뎌져 갔는데, <날씨의 아이>는 오히려 2회차부터 감동이 더 깊어지고 있다. 참 진국이다. 아마 앞으로도 몇 차례 더 관람할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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