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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리뷰] 우리의 계절은

빗도 2018. 8. 6. 19:19


<너의 이름은。> 제작진의 신작이 넷플릭스 독점으로 공개됐다고 해서 정말 기뻤다. '전작보다 못 만들었으면 어떡하지?'와 같은 걱정보다는 기대와 반가움이 더 앞섰다. 그리고 드디어 넷플릭스 정기 결제가 빛을 보는구나 싶었다. 벅차오르는 행복감에 호다닥 감상했다.

우선 한가지 말해두자면, 이번 <우리의 계절은>은 <너의 이름은。>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너의 이름은。>의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오래도록 몸담은,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함께 하고 있는 '코믹스 웨이브 필름'에서 제작한 건 맞으나 같은 제작사라는 것 말고는 감독부터 스태프까지 전부 <너의 이름은。>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 약간 과장 광고 같달까? 마치 생생정보통에 음식점 간판이 스치듯 잠깐 노출됐을 뿐인데 '생생정보통 OOO회 출연!' 현수막을 걸어놓은 그런 느낌이다. 홍보팀의 문제겠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신생 감독의 첫 작품이 대중의 이목을 끌려면 이런 식의 홍보가 효과적이기는 하기에 이해는 간다. 다만 <너의 이름은。> 제작진이라는 말에 속아서 큰 기대를 했던 관객들이 받을 실망감은 어찌해야 할까.



중국의 세 도시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옴니버스 애니메이션


<우리의 계절은>은 멈춰있던 어제에서 새로운 내일을 향해 나아가려는 세 사람의 이야기를 옴니버스 구성으로 하나의 영화로 엮어냈다. 세 사람의 이야기는 각기 독립적이지만, 같은 시간,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을 같은 공간에 한데 모아, 영화의 시작과 끝이 반복되며 이어지는 수미상관을 이루어냈다. 마치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초속 5센티미터>를 보는 느낌이다.


*1장 "따뜻한 아침 식사" : 홀로 도시 생활을 하는 샤오밍은 국수 요리 '미펀'을 통해 과거를 회상하는데, 어렸을 적 할머니와 아침마다 미펀을 먹던 기억, 미펀 가게와 얽힌 씁쓸한 사건, 아련했던 첫사랑 등을 떠올리며 추억한다. 그리고 오랜만에 찾은 고향에서 변하지 않는 것과 변해가는 것들 속에서 어제의 따스함이 여전히 오늘을 채워주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는다.

*2장 "작은 패션쇼" : 유명 패션모델인 이린은 같은 소속사의 신인 수이징의 등장에 위기를 느끼고, 곧이어 자신을 동경하는 여동생 루루와의 사이 또한 틀어지게 된다. 최고의 모델, 동경하는 언니로서의 모습을 지키기 위해 이린은 무리하게 되고 결국 건강까지 악화돼 은퇴까지 고려하는 상황에 놓이지만, 이린의 든든한 조력자인 매니저와 언제나 언니를 바라보는 루루의 작은 이벤트 덕분에 자신감을 되찾게 된다.

*3장 "상하이의 사랑" : 도망치듯 도시의 아파트로 이사한 리모는 절친한 친구 판과 함께 이삿짐을 정리하던 도중, 아파트에서 보이는 고향집 풍경과 이삿짐 속에 들어있던 오래된 테이프를 통해 옛 추억을 떠올린다. 리모, 판, 샤오유 셋은 어렸을 적 절친한 친구였고 언제나 함께할 것 같았지만 고등학교 진학 문제로 뿔뿔이 흩어진다. 특히 리모와 샤오유는 서로 좋아하는 사이였지만 진학과 관련된 각 집안의 가정사로 인해 이 둘은 씁쓸한 이별을 맞았다. 당시에 리모가 미처 듣지 못했던, 이제야 이삿짐 속에서 발견된 리모와 샤오유의 교환 녹음테이프 덕분에 리모는 미처 몰랐던 샤오유의 진심을 알게 되고 뒤늦게 후회한다. "왜 그때 네 목소리를 듣지 못했을까? 언젠가 다시 널 만날 수 있다면... 그날 그렸던 꿈이 이뤄지길 지금도 바라고 있어. 절실하게... 간절하게..." 이후 재개발된 고향 스쿠먼에서 모텔을 운영 중인 판과 리모. 어느 날 비가 개며 햇빛이 기분 좋게 내리쬐기 시작할 무렵, 모텔에 무척이나 그리운 느낌의 어떤 여성이 들어오고, 리모는 그녀를 보며 싱긋 웃는다.

*보너스 영상 : 스탭 롤(엔딩 크레딧) 이후에 나오는 1분짜리 보너스 영상. 다시 영화의 처음 시작 장면인 공항으로 돌아와 세 사람을 비추며 그들이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마음, 이 영화의 주제가 독백으로 나온다. 열린 결말처럼 끝난 3장의 마지막 장면은 이 보너스 영상을 통해 확실한 해피엔딩으로 결말지어지는데, 리모네 일행에 샤오유가 함께 있음을 알 수 있다.


가장 긴 분량을 가진 마지막 3장 "상하이의 사랑". 가장 긴 만큼 가장 극적인 이야기를 담아냈다. 3장은 특히 육교 장면이라던가 마지막 장면이라던가 신카이 마코토 감독 특유의 느낌이 매우 겹친다. 표절을 논하고 싶다기보다는 굉장히 인상적이고 매력적인 장면으로 다가와서 참 좋았다. 개인적으로 정말 마음에 들었던 부분이다.



작품 내내 배경음악이 거의 항상 깔리는데, 적재적소에 정말 좋은 배경음악이 잔잔하게 깔려 각 장면의 분위기를 매우 잘 살려준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초속 5센티미터>도 배경음악이 특히 인상 깊었는데 정말 이 두 작품은 닮은 것 같다. 작 중 배경음악 말고도 3장이 끝난 후 전체 스탭 롤(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의 엔딩 곡 'Vickeblanka - WALK' 또한 굉장히 좋다. 전체적으로 극적이라기보다는 훈훈하고 부드럽고 따뜻한 분위기의 작품이었는데, 엔딩 곡의 음색과 분위기가 참 적절하다. 음악 쪽은 정말 흠잡을 데가 없었다고 생각한다.



작화 또한 풍경을 변태적으로 아름답고 사실적이게 그려내는 코믹스 웨이브 필름답게 훌륭하다. 특히 비와 물, 음식 등은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언어의 정원>과 무척 닮았다. 음악과 마찬가지로 작화 또한 크게 흠잡을 곳이 없었다.



개인적으로 매우 만족스러운 좋은 작품이었다. 상업용 영화가 아닌 만큼 <너의 이름은。>과 비교하는 건 무리가 있겠으나, <초속 5센티미터>나 <언어의 정원>과는 충분히 비벼볼 수 있지 않나 생각한다. 난 여전히 신카이 마코토 감독을 가장 좋아하지만, 이번 <우리의 계절은>을 통해 코믹스 웨이브 필름 신흥 감독들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다. 앞으로 얼마나 더 재밌고 좋은 작품이 나올지 무척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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