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도의 블로그

[리뷰]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본문

잡담

[리뷰]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빗도 2017. 11. 1. 00:24


소설이 원작인 작품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가 코믹스에 이어 영화로도 개봉됐다. 원작 소설은 읽어보지 못했지만 코믹스를 너무 감동적이고 재밌게 보았기에 자연스럽게 영화에도 관심이 가게 됐다. 아무래도 나는 이런 일본 특유의 감성이 취향인듯하다. 역시나 예고편은 따로 보지 않은 채로 관람했다. 개인적으로 기대하는 작품을 볼 때는 애써 예고편을 피하는 편이기도 하지만, 코믹스를 통해 이미 내용을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원작 내용을 제대로 살렸을지 조금은 걱정도 됐지만, 한편으로는 감동을 다시 느낄 수 있다는 기대감에 부풀어 기분 좋게 관람했다.



"너 말야, 정말로 죽어?" "응, 죽어."

다른 사람에 대해선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는 평범한 학생인 '나'는 어느 날, 병원에서 우연히 주운 '공병문고'를 통해 반 최고 인기의 클래스메이트인 '사쿠라'와 비밀을 공유하게 된다. 사쿠라는 췌장병으로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소녀였던 것. 이는 사쿠라의 가족 외에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특급 비밀이었다. 그러한 사실을 알고도 무덤덤할 뿐인 '나'에게 사쿠라는 앞으로의 여생 동안 자신에게 '일상'을 선물해달라며 다가온다.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작 중 사쿠라는 '나'에게 뜬금없이 이렇게 말한다.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라고. 너의 췌장을 먹고 싶다니, 이건 살인을 예고하는 말일까? '나'는 역시나 무덤덤하게 묻는다. "느닷 없이 카니발리즘에라도 눈을 뜬 거야?" 굉장히 자극적이고 잔인한 말 같지만, 사실 여기에는 중요한 의미가 담겨있다. 사쿠라는 "옛 사람들은 어딘가 안 좋은 곳이 있으면, 다른 동물의 그 부분을 먹었대. 그러면 병이 낫는다고 믿었대. 그래서 나는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라고 대답한다. 처음엔 장난처럼 나눈 대화지만, 이는 '나'와 사쿠라 단둘만이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며, 점차 둘만의 암호이자 연결고리가 된다. 그리고 늘 밝게 웃으며 자신의 운명을 철저하게 받아들인듯한 모습의 사쿠라지만, 한편으로는 살고 싶다는 작은 소망을 담은 말이기도 하다.



"비밀을 아는 클래스메이트" "사이좋은 클래스메이트"

사쿠라는 늘 '나'를 이렇게 부른다. '나'가 사쿠라에게 "일기에서 내 이름은 지워줘."라고 말하자 이름에 덧칠해서 지워주겠다고 한 것으로 보아 사쿠라는 '나'의 이름을 알고 있음에도 굳이 이렇게 부르는 것이다. 일종의 애칭이라 할 수 있다. 다만, 다른 친구들은 물론이거니와 사쿠라의 단짝 친구인 '쿄코'에게도 "~ 클래스메이트"라고 부르지 않는 것으로 봐서, 사쿠라의 비밀을 공유하는 유일한 클래스메이트인 '나'만이 사쿠라에게 특별한 존재로 여겨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나'는 사쿠라에게 엮여버린 탓에 사쿠라의 '죽기 전 해보고 싶은 일(버킷리스트)'을 함께 하게 된다. 1박 2일로 떠나게 된 여행에서 함께 추억도 쌓고, 호텔에서 '진실이냐 도전이냐' 게임을 통해 서로에 대해 더욱 솔직히 알아가게 된다.



늘 조용히 책만 읽으며 다른 사람에 대해선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던 '나'는 사쿠라를 만나면서부터 조금씩 변하게 된다. 사쿠라를 대하면서 조금씩 '나' 스스로도 변했지만, 최고 인기 클래스메이트인 사쿠라와 함께 어울리는 것으로 인해 이런저런 소문과 함께 주목(나쁜 의미로)을 받는 등 '나'의 주변도 변해버렸다. 덕분에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불러준, 껌을 좋아하는 친구를 얻게 되었지만, 애써 무시하려고 해도 '나'를 둘러싼 소문이 신경 쓰이게 된다. 결국 '나'는 최고 인기 클래스메이트인 사쿠라에게 어째서 음침한 '나'와 어울리는지에 대해 묻는다. "다른 사람들은 슬퍼하지만 넌 자연스럽게 대화해주잖아. 너한테는 숨김없이 말할 수 있어서 마음이 편해." 사쿠라에게 있어서 '나'는 사쿠라의 비밀을 알면서도 '일상'을 지켜줄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아닐까.



"우연이 아니야. 흘러온 것도 아니야. 우린 모든 걸 스스로 선택해서 여기까지 온 거야."

'나'는 사쿠라에게 우연히 공병문고를 통해 엮이게 된 '나'보다는 사쿠라를 진심으로 좋아해 주는 사람들과 남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한다. 하지만 사쿠라는 우리의 만남이 '우연'이 아니었다고 말한다. 같은 반이 된 것, 병원에서 떨어져 있던 공병문고를 주운 것, 그리고 읽은 것 모두 우리가 스스로 선택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게 사쿠라는 은근슬쩍 '나'에 대한 사쿠라의 속내를 넌지시 밝힌다.



사쿠라의 병세가 악화되어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을 때, '나'는 사쿠라와의 통화에서 평소와는 다른 위화감을 느끼자마자 늦은 밤인데도 불구하고 병원으로 뛰어간다. 사쿠라는 한가지 진심으로 묻고 싶은 게 있는데 용기가 나지 않는다며, 마지막으로 진실이냐 도전이냐 게임을 하자고 제안한다. 하지만 '나'의 승리로 게임이 끝나버리고, '나'는 사쿠라에게 "살아 있다는 건 너에게 어떤 의미야?"라고 묻는다. 이에 사쿠라는 다른 사람과 함께 지내면서 느끼는 여러 감정들이 자기 자신을 만들어주고 살아있다고 느끼게 해준다고 말한다. 아마도 사쿠라가 늘 '나'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이었을 것이다.

결국 그날 밤 사쿠라가 묻고 싶었던 질문은 더 이상 들을 수 없게 되었다. 사쿠라는 떠났고, 그녀의 공병문고는 일종의 유서로써 남았다. 그리고, 그곳에 사쿠라가 끝내 묻지 못했던 질문이 적혀있었다.

"병원에서 내가 진실이냐 도전이냐를 하자고 했을 때, 뭘 물어보려고 했는지 알려줄게. 그건 말이지, 왜 너는 내 이름을 부르지 않아?"

작 중 '나'는 한 번도 사쿠라를 이름으로 부른 적이 없다. 항상 '키미(너)'라고 불렀을 뿐. 하지만 사쿠라는 이어서 그 답을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나'가 곧 떠날 사람이 자신의 깊숙한 곳에 오는 것이 염려되었을 것이라고 결론을 내린 사쿠라지만, 아마 정답이지 않을까.



"너는 질색할지도 모르지만, 나는 역시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사랑한다는 말보다 더 다양한 의미를 담고 있는 말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처음엔 그저 괴상망측할 뿐이었지만 지금은 전혀 다른 느낌이다. 정말 적절한 제목이자 문구가 아닐까. 일본 특유의 잔잔한 멜로의 전형이었지만, 난 어째서 늘 이런 영화만 보면 눈물샘이 터지는 건지 모르겠다.

코믹스와 비교하면 핵심 내용과 대사 모두 그대로 잘 살린듯하다고 생각된다. 다만 구성에 있어서는 조금 다른데, 코믹스에서는 학생 시점에서부터 쭉 진행되는 반면, 이번 영화에서는 어른이 되어버린 '나'가 과거를 회상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그리고 본 내용은 같은데 결말부만 조금 다르다는 점. 미묘한 차이지만 개인적으로는 둘 다 마음에 든다.

OST와 배우 모두 마음에 든다. 엔딩크레딧 때의 노래도 좋았으나 극 중 전체적인 BGM들이 영화에 잘 녹아든 것 같고, 배우 또한 '나' 역의 '오구리 슌', '키타무라 타쿠미' 그리고 사쿠라 역의 '하마베 미나미' 모두 캐릭터를 잘 살린듯하다.



오래간만에 가슴 따뜻하고 기분 좋은 영화를 본 것 같다. 애니메이션 <4월은 너의 거짓말> 느낌도 나고, 영화 <다만, 널 사랑하고 있어> 같기도 함. 나중에 블루레이 정발하면 살까 보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