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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리뷰] 위플래쉬

빗도 2017. 8. 18. 00:30


지난번에 아는 형과 함께 영화 <라라랜드>를 보고 나서 같은 감독의 이전 작품이라며 형에게서 추천받은 영화 <위플래쉬>. 추천받은 지 2주 정도 되가는데 이제야 봤다. 별다른 사전 정보 없이 그저 "노력하는 천재에 관한 이야기야."라는 말만 듣고 감상했는데, 영화를 다 보고 나니까 위 영화 메인 포스터에서 '천재를 갈망하는 광기가 폭발한다!'라는 문구가 이 영화를 가장 잘 나타내는 문구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친 듯한 기미'라는 뜻을 가진 단어 '광기'. 이 영화는 정말 미친놈'들'의 이야기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가 이 영화를 보고 느낀 것 중 가장 핵심 키워드는 '광기'였다.



<위플래쉬>는 미국의 한 유명한 음악대학에서 '제2의 버디 리치'를 꿈꾸는 신입생 '앤드류'와 천재적이지만 폭군과 같은 면모를 가진 교수 '플렛처'가 만나면서 시작된다. 폭언과 폭력을 서슴지 않고, 너무도 비정하게 기존 멤버를 내쫓고 새로운 멤버를 영입하는 등 영화 내내 범상치 않은 모습을 보여주는 플렛처 교수. 그런 플렛처 교수가 어느 날 앤드류의 잠재력을 발견하고는 자신의 재즈 밴드로 발탁, 앤드류는 밴드 내에서 메인 드러머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플렛처 교수 또한 천재적인 음악가를 양성하려는 야망이 있기에 앤드류에게 도가 지나칠 정도로 잔인하게 채찍질하며 지도한다. '천재가 되기 위해 광적으로 매달리는 자'와 '천재를 키워내기 위해 광적으로 몰아붙이는 자'가 바로 이 영화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어느 날, 플렛처 교수는 앤드류에게 천재 음악가 '찰리 파커'에 관한 일화를 말해준다.

어느 날 밤, 찰리는 레노 클럽에서 세션으로 참여하여 연주하게 되었는데 그는 솔로 부분을 망쳐버렸다. 드러머가 그에게 심벌즈를 던져버렸고 관객들은 야유했다. 눈물을 머금고 그날 밤, 잠자리에 들며 찰리는 다짐한다. 그는 절치부심하여 연습하고 또 연습했고 결국 레노 클럽에 돌아와 세상을 놀라게 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겠지?"라며 플렛처 교수는 이런 비참함을 이겨내야 성공할 수 있다는 말을 돌려 얘기한다.



'위플래쉬'는 영화의 제목이기도 하지만, 영화 속에서 재즈 밴드가 연주하는 곡이기도 하다. 중간 부분 드럼 파트의 '더블 타임 스윙' 주법으로 완성된 질주하는 독주 부분이 일품으로 꼽히는 곡이기에, 주인공이자 드러머인 앤드류가 플렛처 교수에게 유독 지독하게 지도 받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단어의 어원이 '채찍질'을 뜻한다는 점도 이 영화의 핵심 스토리를 관통하기에 참 심오하게 느껴진다.



분해도 늘 속으로 삭이며 이를 갈고, 미친 듯이 노력하며 전부를 쏟아 힘겹게 지켜낸 메인 드러머의 자리는, 앤드류의 집착은, 결국 마지막 경연 날 사고로 인해 어이없게 무참히 박살 나 그동안의 노력이 모두 물거품이 되버린다. 그동안 참아온 울분과 플렛처 교수에 대한 분노가 폭발해버린 앤드류. 결국 무대는 아수라장이 되고, 이로 인해 앤드류와 플렛처 교수는 돌이킬 수 없는 사이가 된다. 영화에 몰입하다 보니 앤드류의 심정이 크게 공감되서 나도 모르게 가슴이 답답해졌다. 나 같아도 멱살 잡았을 듯.



그 사건 이후, 앤드류는 드럼을 그만두게 된다. 또한 플렛처 교수의 폭군 같은 교육 방식이 외부에 알려지면서 기관에서는 조사에 나서게 되었고, 이에 앤드류는 모두 사실대로 말한다. 하지만 어느 작은 재즈 카페에서 우연히 앤드류와 플렛처가 재회하게 된다. 여기서 플렛처가 다시금 찰리 파커의 일화와 수업 때 잠깐 언급했던, 자신이 키워낸 제2의 찰리 파커의 자살에 대해 얘기하며 "자살은 유감이지만, 진정한 제2의 찰리 파커라면 절대로 좌절 안 해. 난 결국 제2의 찰리 파커를 키워내지 못했지만, 나의 수많은 노력과 시도에 대해 후회는 없어."라며 자신의 교육 철학을 확고히 한다. 난 이 대사에 대해서 공감과 더불어 한편으로는 죄책감을 느끼지 못한 모습에 무서움을 느꼈다. 플렛처의 싸이코 같은 면모가 드러나는 장면 1.



이후 플렛처의 제안에 다시금 엄청난 무대에 서게 된 앤드류. 하지만 이는 속이 좁은 플렛처의 계략이었고, 제대로 한방 먹은 앤드류는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그동안 자신이 갈고닦은, 플렛처의 채찍으로 단련된 '위플래쉬의 더블 타임 스윙 드럼 솔로'를 연주하기 시작한다. 이 장면은 굉장히 소름 돋는 명장면이라 생각되지만, 동시에 플렛처의 싸이코같은 면모가 드러나는 장면 2이기도 하다. 자신이 한방 먹이려 했던 앤드류가 오히려 막 나가며 역으로 자신에게 한방 날리자 약이 오를 대로 오른 플렛처지만, 앤드류의 그동안의 노력의 결실이, 천재성이 발휘되자 분노는 온 데 간 데 사라지고 진심으로 앤드류의 한계를 끄집어내려는, 천재를 이끌려는 모습을 보이며 영화는 끝난다.


재미는 있었지만 결말부에서 천재들의 싸이코틱한 모습이 어쩐지 복잡 미묘하게 느껴졌다. 앤드류는 끝내 비참함을 이겨내고 위대한 음악가로 탈바꿈한 건 명백한 사실이지만, 그럼 결론적으로 '앤드류를 천재로 이끈 플렛처가 옳았던 것이냐?'라는 물음에는 흠.... 한때 유행어였던 "노오오오오력이 부족해!"라는 말. 당연히 천재들이 일반인들보다 수십수백 배 더 노력해서 성공한 건 반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그걸 보고 본받으라는 건 어쩐지 불쾌하다. 이 영화는 그걸 말하고 있는 것 같아서 마지막이 썩 후련하지는 않았다. 감독이 말하고자 한 바와는 전혀 다른 감상을 해버린 것 같지만, 뭐, 나에겐 그런 영화였다.


여담이지만, <위플래쉬>와 <라라랜드>를 통해 '데이미언 셔젤' 감독이 엄청난 재즈 덕후라는 사실을 알았다. 실제로 감독이 학창시절 드러머였다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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