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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리뷰] 1987

빗도 2018. 1. 2. 21:21


1987년 1월 한 대학생의 죽음이 6월의 광장으로 이어지기까지


1987년 6월, 모두가 한목소리로 불의에 맞섰던 뜨거웠던 시간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영화 <1987>은 그 의문에 대한 답을 그때를 살았던 사람들에서 찾았다. 진실을 은폐하려는 경찰과 권력 수뇌부, 이에 맞서 각자의 자리에서 신념을 건 선택을 했던 사람들의 행동이 모여 광장의 거대한 함성으로 확산되기까지. 가슴 뛰는 6개월의 시간을 <1987>이라는 영화로 담아냈다. 1987년 1월 14일,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조사받던 스물두 살 대학생 박종철이 고문으로 사망한다. 그저 또 하나의 의문사로 덮일 수도 있었다. 그런데, 무고한 한 젊은이의 죽음을 접했던 모두가 용기 있는 선택을 하고, 그 선택에 충실했던 이들의 행동이 연쇄적으로 사슬처럼 맞물리면서 거대한 파동을 만들어냈다. <1987>은 권력 아래 숨죽였던 사람들의 크나큰 용기가 만들어낸 뜨거웠던 그 해, 1987년을 그려냈다.



드라마틱했던 1987년, 격동의 시간, 뜨거웠던 사람들


<1987>은 한 젊은이의 죽음이 어떻게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는 거대한 흐름으로 확장되었는지, 1987년을 뜨겁게 살아갔던 사람들의 이야기에 주목한다. 그들의 이야기는 기록 속에 박제되기에는 너무나 생생한 사람들의 드라마로 가득 차 있고, 오늘의 한국 사회의 주춧돌을 놓은 뿌듯하고 소중한 기억이기 때문이다. 그 지점에서 <1987>은 시작되었다. 차가운 주검으로 돌아온 스물두 살 아들을 한겨울 얼어붙은 강물 속에 흘려보내야 했던 한 아버지의 슬픔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강력한 공권력의 상징과도 같은 대공수사처장(김윤석), 화장동의서에 날인을 거부한 검사(하정우), 진실을 보도한 기자(이희준), 재야인사의 옥중서신을 바깥으로 전달하는 교도관(유해진)과 무모해 보이는 선택을 하는 이들을 숨죽이며 지켜보던 평범한 대학생(김태리), 이 밖에 박처장의 명령을 받들다 더 큰 목적을 위해 수감되는 대공형사(박희순) 등 각자 다른 위치에서 부딪히고 맞물리며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드라마틱했던 격동의 6월로 완성됐다. <1987>은 실재했던 이들의 드라마가 가진 생생함에 덧붙여 그들이 겪었을 법한 사건과 이야기를 손에 잡힐 듯 따라가며, 그들 중 한 명이라도 다른 선택을 했다면 6월 광장의 시간은 불가능했을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또한 숨죽였던 이들의 용기가 지닌 가치를 드라마틱하게 묘사하며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묵직한 울림을 전한다.



사실적인 접근과 드라마틱한 순간을 위한 촬영기법


<1987>은 실제 사건과 실존 인물들의 이야기에 기초하고 있어 이 이야기를 어떻게 진정성 있게 화면에 담을 것인가에 많은 중점을 두었다고 한다. 제작진은 스펙터클을 강조하는 시네마스코프 화면 비율보다는 역사적인 사건의 진실을 대하는 느낌을 담아내기 위해 익숙한 화면 비율인 1.85:1을 선택했고, 영화의 전반부는 필름 영화가 주를 이뤘던 80년대 시절에 나온 칼 자이즈 하이스피드 렌즈를 호환해서 사용하였으며,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사실적인 접근을 위해서 핸드헬드 촬영으로 인물의 감정을 놓치지 않았다. 이는 2017년 유일하게 천만 관객을 기록한 영화 <택시운전사>와 상당히 비슷하다.



<택시운전사>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1987>


<택시운전사>는 주인공인 택시운전사 만섭(송강호)와 독일기자 피터(토마스 크레취만) 두 명의 행적을 위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반면 <1987>은 앞서 말한 것처럼 다양한 위치에 있는 다양한 사람들의 행적을 동시에 그려냈기 때문에 각 인물들의 위기가 동시다발적으로 전개됨에 따라 관객들로 하여금 더욱 긴장의 끈을 놓지 않게 한다. <택시운전사>는 재미를 위한 조미료를 조금 넣었다면, <1987>은 조미료가 전혀 첨가되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느낌이다. 그래서일까? 보다 진지하고 무겁게 느껴지지만 그만큼 우리에게 다가오는 의미가 크다.



기대되는 또 다른 천만 영화


<택시운전사>의 경우를 보아 <1987> 또한 천만 영화가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이지만, 현재 상영작 중 영화 <신과함께>의 기세가 여전히 꺾이지 않고 있기 때문에 쉽게 예상하기 힘들다.(<신과함께>는 1월 1일 기준 945만 명을 기록 중이니 거의 확정이라고 볼 수 있다.) 다만 그것과는 상관없이 한국 영화에, 그 시대를 기억하는 우리들에게 의미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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